
저술가용 에디터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받은 질문이 있습니다.
"AI 채팅 기능은 언제 추가돼요?"
이 질문이 왜 어려운지, 우리가 왜 그 방향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대신 선택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Cursor를 써본 개발자라면 이 느낌을 압니다. 사이드바에 채팅창이 생기는 순간, 에디터가 서서히 보조 도구가 되기 시작합니다. "여기다 물어보면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생각이 작업 방식을 바꿉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릅니다.
작가에게 "AI가 이어서 써줄게요"는 생산성 향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작가의 목소리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요약과 윤문으로 시작해도, 챗봇이 있으면 사용자는 반드시 "이어서 써줘"로 갑니다. 이것은 거의 100% 발생하는 패턴입니다.
챗봇을 넣는 순간 제품은 챗봇이 됩니다.
우리가 만들려는 것은 "AI 기능이 있는 에디터"가 아닙니다. "AI를 이용해 작가가 더 잘 쓰게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이 둘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제품입니다.
소설은 상상입니다. 시나리오는 픽션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창작물에서 진실을 찾습니다. 그리고 창작물이 그 진실을 배신하는 순간, 독자는 떠납니다.
이것이 핍진성(verisimilitude)입니다.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 순수한 창작 안에서도 내부 논리가 일관되고, 인물의 행동에 개연성이 있으며, 배경과 시대가 어긋나지 않는 것.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이 순간을 압니다. 앞에서 심어둔 단서를 세 챕터 뒤에서 스스로 부수는 순간. 인물이 분명히 모른다고 했던 사람을 갑자기 친구처럼 대하는 장면. 집필에 몰입할수록 이런 오류는 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집자가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AI가 그 역할의 일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Blankr의 AI는 세 가지 원칙을 따릅니다.
첫째, 생성하지 않는다. 외부 자료 기반의 새로운 내용 작성은 없습니다. AI는 항상 작가가 쓴 텍스트를 기반으로만 작동합니다. 윤문은 원문의 의미를 보존하며 표현만 바꿉니다.
둘째, 근거를 보여준다. AI가 "이 부분이 문제입니다"라고 말할 때는 반드시 원문을 인용하고, 어떤 지점이 충돌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막연한 제안은 없습니다.
셋째, 적용은 작가가 결정한다. AI의 제안은 언제나 Preview 상태로 존재합니다. 자동 적용은 없습니다. 이것이 의도적인 모순인지 실수인지, 문체를 바꿀지 유지할지 — 모든 판단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챗봇은 자유 입력, 전체 문맥, 비구조적 요청 방식입니다. 반면 Blankr의 AI는 selection 기반입니다. 작가가 텍스트를 선택하면 그 선택이 AI의 작업 범위를 정합니다. 컨텍스트 메뉴에서 "윤문", "요약", "문체 분석"을 실행하면 결과는 사이드 패널에 표시됩니다. AI가 먼저 말을 걸지 않습니다.
채팅창 대신 작업 패널. 자유 입력 대신 구조화된 작업 선택. 에디터가 중심이고, AI는 에디터 뒤에서 밀어줍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방향을 선택하면서 포기한 것이 있습니다. "AI가 알아서 써주는 도구"라는 마케팅은 지금 이 시장에서 가장 쉬운 판매 방식입니다. LLM 기반 서비스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자연스럽게 챗봇 인터페이스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얻은 것도 있습니다. Blankr를 쓰고 나서 완성된 원고는 작가 자신의 것입니다. AI가 쓴 문장이 섞이지 않습니다. AI가 발견해준 오류를 작가가 직접 고쳤습니다.
그리고 그 원고는 더 진실합니다.
"AI와 대화하는 게 아니라, 글을 놓고 AI와 함께 생각한다."
이것이 Blankr가 만들고자 하는 경험입니다.
Blankr는 현재 소규모 테스트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술가,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를 위한 에디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